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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눔과 나눔] 함께 하는 이야기 -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이름: 관리자


등록일: 2020-05-26 11:29
조회수: 462 / 추천수: 72


함께 하는 이야기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_

손영순 까리따스 수녀

나눔과나눔 ・ 2020. 5. 17. 19:11

손영순 까리따스 수녀님은 2017년부터 나눔과나눔과 인연을 맺어주신 든든한 후원자이십니다.
그동안 나눔과나눔과 함께 여러 강연들에서 호스피스 활동을 통해 얻으신 경험들을 이야기해주셨고,
2018년에는 자선음악회를 통해 나눔과나눔을 후원해주셨습니다.
작년 말에는 저금해오신 돈을 나눔과나눔을 위해 기부해주셨습니다.
임종자들을 위해 한평생 봉사하시며 수녀님께서 연단해오신 철학을 살펴보면,
많은 부분이 나눔과나눔과도 닮아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소개

저는 손영순 까리따스입니다.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소속의 수녀이고요, 지금은 서울 용산구에 있는 모현 호스피스에서 호스피스 활동, 특히 사별가족을 위한 돌봄을 소명으로 삼아 봉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수녀가 되다

원래 저희 가족은 천주교가 아니었는데, 저 때문에 성당을 다니게 됐어요. 제가 한 5살 때부터 동네 아이들 따라서 성당도 다녀보고 교회도 다녀보고 했는데, 그때 성당에서 아이들이 첫영성체 모시는 걸 보는데 저는 못 하는 거예요. 왜냐면 집안 어른들이 신자가 아니면 아이의 신앙생활 이끌 수 없으니까 영성체를 해주지 않는 거예요. 그때 제가 무슨 신앙이 있고 종교가 뭔지 알았겠어요? 친구들은 머리에 하얀 것도 쓰고 뭐도 받아먹고 그러는데 저는 못 하니까, 어린 마음에 친구들 세례받는 해마다 울고불고 난리를 쳤죠. 당시에 무남독녀였던 제가 하도 극성을 피우니까, 국민학교 2학년 때 할머니랑 어머니가 가족 중에 먼저 성당을 다니기 시작하시고 저도 같이 세례를 받게 되면서 신앙생활을 하게 됐어요.

20대 때에는 직장을 다니다 29살에 수녀원에 입회할 생각으로 퇴직을 했어요. 직장도 굉장히 재밌고 보람 있었지만, 왠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만두었죠. 하지만 수녀원에 입회한 것에 구체적인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단지 어려서부터 남을 도우며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긴 했죠. 천주교에는 보통 ‘성소의 씨앗’이라 해서 “너에게 언제 하느님의 어떠한 부르심이 있었는가”라는 질문이 있는데, 그 질문을 받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건 국민학교 4학년 즈음에 TV에서 봤던 모습이었어요. 어떤 아저씨가 폐차된 버스를 인수했는데 그걸 허허벌판 같은 곳에 놓고, 지금 말하면 고아인 아이들 6~7명을 거두어서 당신이 벌어온 것으로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학교도 보내고 하더라고요. 그 모습을 그 어린 마음에도 굉장히 감명 깊게 본 것 같아요. 그러면서 “정말 훌륭하시다, 나도 저렇게 세상에 있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내가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지를 어렴풋이 마음먹었던 것 같아요. 입회하게 된 건 그런 마음이 가장 첫째의 이유였고, 또 퇴직 후 2년 동안 신학원에서 공부하고 또 주변의 훌륭한 신부님들 수녀님들의 모습을 보면서 수도 생활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굳어진 것 같아요. 그렇게 해서 1990년에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에 입회하고, 1999년에 종신서원을 받아서 수녀가 됐습니다.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제가 소속된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Little Company of Maria: LCM)는 죽어가는 이들에 대한 돌봄을 영성으로 하는 수녀회에요. 가톨릭에서는 수도회마다 고유의 영성(Charism)을* 가지고 있어요. 예를 들어서 ‘울지마 톤즈’ 이태석 신부님과 관련된 수녀회는 주로 소외된 청소년들에게 헌신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수도회고, 또 어르신들을 위해, 미혼모와 여성을 위해 헌신하는 수도회도 있고, 종류는 다양해요. 저희 수도회는 “임종하는 이들을 돌보는 수도회”라는 목적으로 메리 포터(Mary Potter)에 의해 1877년 영국에서 창설됐어요. 그것이 현대적 의미에서 호스피스가 된 것이죠. 한국 LCM 관구는 1963년에 설립되어 호스피스를 특화된 사도직으로서 수행하고 있고요, 또 제가 속한 이곳 LCM 산하 모현 호스피스에서는 가정방문 호스피스와 더불어 사별가족 돌봄, 그리고 국립암센터를 비롯한 각 기관의 호스피스 돌봄자 양성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호스피스 임종자들의 기록을 살피는 손영순 까리따스 수녀

저는 1990년에 LCM에 입회했는데, 처음에 이 수도회는 뭘 하고 저 수도회는 뭘 하는지 다 알아보고 들어간 건 아니고요. 저희 수도회 이름을 처음 봤던 그때 ‘작은’이라는 그 말이 와닿았어요. 그리고 옛날에 건물은 완전 다 헐어서 쓰러질 것 같은 낮은 이층집이었는데, 어느 날 모임을 하러 남산 윗길을 타서 수녀원으로 내려오던 길에, 보통 수녀님들이 표현하시듯 “아, 내 집이다”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담벼락은 허물어지고 비도 새지만, 어떤 아늑함과 수녀님들의 격의 없는 환대가 있음을 느낀 거죠.

이 수녀회가 어떤 일을 하는 지는 모임을 하면서 알게 됐죠. 그런데 저는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하고 살았기 때문에 어르신들에게 거리감을 느끼지도 않았고, 또 할머니 장례를 집에서 치르는 걸 봤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서 부담감이 있지도 않았어요. 그랬는데, 지금의 수녀회에 있게 된 건, 잘 모르겠네요. 처음부터 이 집이 꼭 맞아서 왔다기보다, 그저 우리가 늘 얘기하듯 단순한 이유로 부름을 받아서 들어와 살다가 성숙해지고 또 가미가 되고, 그렇게 자기 모형이 만들어져간 것이라 생각해요.​


호스피스, 이별할 이들을 위한 돌봄

모현 호스피스는 병동이 아니고 가정방문 호스피스예요. 집에서 임종하시는 분이 가족들 곁에서 임종을 최대한 잘 맞이할 수 있도록 옆에서 지지해주는 거죠. 전통적인 죽음의 형태는 집에서 임종하는 것이었는데, 요즘은 대부분이 병원에서 임종하잖아요. 그런데 아무래도 병원의 환자 돌봄은 의료적 부분을 우선으로 하거든요. 저희처럼 찾아가서 목욕을 시켜주고 머리를 감겨주고, 이런 것들은 일반 병원에서는 해주지 않고요. 또 어떤 심리적 지지, 영적 지지, 아니면 가족 지지까지 돕진 않죠. 그렇지만 이런 부분들은 꼭 필요하기 때문에, 저희가 가정방문 호스피스를 통해 신체적, 심리적 돌봄을 드리는 거예요. ​

2017년 마포돌봄네트워크 강좌 '골목에서 사람을 만나다'에서 강연 중인 손영순 까리따스 수녀

호스피스를 잘못 이해하면 단순히 편안하고 안락하게, 안 아프게 돌아가시도록 돕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게 아니라 죽기까지의 삶을 잘 살게 해드리는 것이 호스피스에요. 예컨대 환자가 이제 살날이 두 달 남았다 하면 돌아가시지 않았어도 누워서 아무것도 안 하면서 “나는 이제 죽는 날만 기다린다,” 이런 식이 아니라 “나는 정말 최선을 다해서 살아보겠다” 하도록, 걸을 수 없으면 걸을 수 있게, 일상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죠. 마음의 짐도 내려놓고, 심리적인 지지도 받고, 가족들하고도 화해하고, 마지막 인사도 하고, 오래 누워 있었기 때문에 감히 생각도 못 했던 소풍이나 여행을 가기도 하고, 그렇게 일상을 잘 살도록 하면 결국 편안하게 돌아가실 수밖에 없어요.

또 호스피스는 총체적 돌봄(holistic care)이라고 해서 환자만을 돌보는 게 아니라, 환자와 그 가족이 한 돌봄의 단위가 돼야 해요. 집에 환자가 있으면 그들도 힘들지만 돌보는 이들도 신체적, 정신적으로 많이 소진되기 마련이잖아요. 보통 집에서는 환자가 혼자 있거나, 주보호자가 환자하고 24시간 같이 있게 되니까요. 저희 호스피스 센터에서는 한 달에 몇 번씩 집에 계신 환자분들을 센터로 모시고 와서 돌봄을 제공하는 데이케어 프로그램도 하는데, 센터로 오면 환자는 다른 사람들하고 식사도 하고 각종 프로그램도 할 수 있고, 그때 가족도 조금 쉴 수 있고 또 다른 가족을 만나 이야기하면서 좀 숨통이 트이죠. 이런 다양한 영역에서의 돌봄이 호스피스에 있어 중요해요.​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사별가족을 위한 돌봄

환자는 사실 저희와 인연을 맺고 떠나는 시간이 얼마 안 돼요. 병동에 누가 입원을 해서 돌아가시는 그 기간이 평균 한 20일 정도밖에 안 된대요. 그런데 사별가족은 우리 눈앞에 10년, 20년, 50년까지도 존재하죠. 그동안 그분들이 갖고 견뎌내야 하는 고통들은 사실 정교화된 병원에서도 그렇게 크게 다루지 않거든요. 사별가족을 돕는다고 해도 그냥 일회성으로 한다든가, 아니면 몇십 명 모아놓고 하는 식의 돌봄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가족들이 죽음의 상실에서 회복하는 것을 계속 지지해주는 부분은 부족하죠.

그러다 보니 저희 센터에서는 사별가족의 모임에 비중을 크게 둘 수밖에 없고, 또 거기에 굉장히 큰 가치를 두고 있어요. 기수마다 8주간 10회기로 사별가족 모임을 조직하는데, 참가자들은 타인과 주고받는 위로와 지지를 통해서 동질감을 느끼죠. 사별가족모임은 이런 동질집단을 만들어주는 게 첫 번째 목적이에요. 생전 처음 만난 사람들이고, 가장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다는 점이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이슈 하나밖에 없음에도 이 집단은 중요해요. 왜냐하면 세상 안에서 울 수 없고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이죠. 세월이 2-3년 지났는데 그때 울고 다니면 사람들이 몇 년이 지났는데 새삼 저러냐는 식으로 반응한다는 거죠. ​

사별가족모임을 준비하는 손영순 까리따스 수녀

모임을 진행하다보면 서로 친밀감이 좋아져요. 그들이 울고 싶을 때, 누군가에게 실컷 이야기하고 싶을 때 물론 저희 센터도 그 대상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자기들끼리 친밀감이 형성되면 밤이고 낮이고 얘기하고 싶을 때, 울고 싶을 때 전화하고 만나기도 하고요. 또 그러다 나중에는 당신들끼리 제주도에 한 달 방 얻어서 살고, 말레이시아 싱가폴로 같이 여행도 가고 하죠. 그렇게 그분들끼리의 관계가 아주 끈끈해지고, 그 끈끈해진 관계는 아주 오래 가죠.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시간에 함께 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니까요. 또 그분들이 점차 긍정적인 봉사자로, 아니면 후원자로 변해가는 모습도 봐요. 이렇게 사별가족모임을 통해서 유가족 서로가 서로에게 굉장히 큰 지지그룹이 되는 거예요.

저희가 늘 환자나 사별가족들에게 하는 얘기가 뭐냐면,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저희가 함께 있겠습니다.” 이건 어떻게 생각하면 모현의 모토라고도 할 수 있는 거예요. 당신들이 언제나 힘들고 어려울 때 언제라도 와도 되고, 전화해도 된다, 그게 굉장히 든든한가 봐요. 전화를 안 하더라도 마음속에는 “나는 힘들 때 어디로 전화하면 돼, 찾아가면 돼, 우리 동기가 있어, 수녀님이 있어” 이런 거죠. 그러니까 환자는 물론 사별가족들에게도 그런 메시지와 확신을 심어주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정말 밤에라도 달려와 줄 사람이 있다는 것. 아마 그것이 우리가 그들에게 주는, 어떻게 생각하면 세상에 주는 메시지인 것 같아요. ​

좋은 임종이란

‘납관부일기’라는 책이 있어요. ‘Good & Bye’라는 영화로도 나왔는데, 거기에 보면 “깨달음이라는 것은 여하한 경우에도 잘 죽는 것이 아니고, 여하한 경우에도 잘 살아가는 것이다”라는 얘기가 있어요. 그러니까 일상을 잘 사는 것이 결국은 좋은 죽음을 맞이하는 조건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요즘 한창인 웰다잉 열풍은 잘못된 것 같아요. 웰다잉 교육 때 꼭 괜찮은 영안실이나 오동나무 관, 안동 베 수의, 이런 걸 둘러보는 게 꼭 있던데, 사실 신체적인 부분이나 사후의 일만 다루는 그런 것이 웰다잉이 아니에요. 웰다잉은 사전이 더 중요하거든요. 죽음 전까지의 삶을 어떻게 잘 살 것인지, 내 마음가짐은 어떻게 할 것인지, 가족들이나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잘 풀어낼 것인지, 이런 것이 중요하죠. 그래서 좋은 임종이란 결국 좋은 삶인 것 같아요, 좋은 삶에 의한 좋은 죽음의 기다림일 뿐이죠.

후원금 기부를 위하여 나눔과나눔 사무실을 방문한 손영순 까리따스 수녀​

나눔과나눔에게 보내는 메시지

저는 2017년에 나눔과나눔의 존재를 알게 됐어요. 2017년에 지역주민들에게 죽음에 대한 얘기를 해달라고 요청이 와서 마포구에서 강연을 했는데, 그때 강원남 선생님이 그 강의를 들으러 오셔서 만나게 됐고, 또 강원남 선생님을 통해서 나눔과나눔을 알게 되어서 어떤 일들을 하는 곳인지 알게 됐죠. 그런데 참 부끄럽더라고요. 박진옥 상임이사님이나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희망도 없고, 현실적으로 경제적인 수입도 전혀 보장되지 않는 일에 자신들의 삶을 거신 셈이잖아요. 정말 세상은 넓고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그런 일들은 너무 많은데, 그 일 중에 하나를 하시는 거죠. 어떻게 보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영역의 선구자고 개척자죠. 그래서 저는 한편으로 깜짝 놀랐고, 또 부끄러운 생각도 들었지만 그 혜안에 대해서 제가 너무 감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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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나눔이 서울시 조례를 비롯한 법이라든가 제도를 계속 만들어가는 데에 기여를 하면. 또 그로 인해서 혜택을 받으시는 무연고자 분들에게 희망이 생기는 거잖아요, “적어도 나 죽으면 까마귀밥이 되지는 않겠지. 장례는 치러주겠지, 울어줄 사람은 있지, 빈소는 차려주겠지.” 돌아가시는 당신들이 사후에 그걸 정말 알게 될지는 모르지만, 내 장례를 치러준다는 것 하나로도 살아가는 데 굉장히 큰 힘이 되고, 자존감도 안도감도 생기고, 그야말로 삶의 질이 달라지거든요.

그래서 저는 그런 일들이 많이 확산됐으면 좋겠어요. 이런 사각지대를 계속 발견하고 나아가서 법안까지도 만드는 일들은, 그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는 거죠. 그래서 나눔과나눔에 종사하시고 봉사하시는 분들이 모두 어마어마하게 큰일을 하고 있다는 자긍심과 보람을 가지고,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일들에서 어떠한 삶의 큰 의미를 찾으시고, 기쁘고 행복한 마음으로 활동을 이어나갔으면 좋겠다는 당부와 함께 감사하는 마음을 드리고 싶습니다.

- 이 글은 나눔과나눔 김진선 자원봉사자가 작성하였습니다.

https://blog.naver.com/hopenana/221967325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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