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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국민일보_웰다잉, 삶의 끝을 아름답게 2부 ⑩] 사별가족 돌봄모임 ‘샘터’ 23기 졸업식 하던 날
이름: 관리자


등록일: 2016-05-19 15:51
조회수: 1304 / 추천수: 164


[웰다잉, 삶의 끝을 아름답게 2부 ⑩] 사별가족 돌봄모임 ‘샘터’ 23기 졸업식 하던 날


지난 3월부터 8주간 매주 목요일이면 서울 용산구 모현호스피스에서 사별가족 돌봄 모임 ‘샘터’가 열렸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아픔을 지닌 이들이 모여 서로를 위로하고, 극복하는 법을 배우는 자리다. 샘터 모임이 열린 지난달 28일 ‘평화’라고 적힌 작은 액자가 놓인 창문 너머로 햇살이 빛나고 있다. 이 창문 위에 김재일씨가 사별한 아내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을 담은 ‘상실노트’의 한 구절을 그래픽으로 합성했다. 서영희 기자


2부: 웰다잉, 이제 준비합시다

⑩사별가족 돌봄 프로그램 필요하다

“여보. 당신 손, 조그마한 손 예뻤지요. 그 손으로 아이들 잘 키우고 참 억척스러운 당신이었지요. 당신 손, 꼭 잡고 이별했지요. 그 순간만 생각하면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어요. 그 작은 손, 정말 예쁜 손, 지금 한 번 더 만져보고 싶어요.”

지난달 28일 김재일(70)씨는 한동안 ‘상실 노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의 아내는 지난해 11월 세상을 떠났다. 1997년 발병한 유방암은 아내를 오랜 세월 괴롭혔다. 10년쯤 지나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암세포는 기어코 폐로 전이됐다. 수술도 소용없었다. 아내를 그렇게 보낸 뒤 상실감이 찾아왔다. 집을 나서기조차 힘들었다. 우울증 약을 삼켜보기도 했다. 김씨는 “죽고 싶었다. 죽으려고 했다. 죽을 것만 같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샘터’ 졸업하던 날

김씨는 지난 3월 서울 남산 자락에 자리를 잡은 모현호스피스의 사별가족 돌봄 모임 ‘샘터’를 처음 찾았다. 아내가 삶의 마지막을 보낸 울산대병원 호스피스에서 힘들어하는 그에게 ‘샘터’를 권유했었다. 이곳에서는 아내를 떠올리며 눈물을 훔쳐도 “다들 한 번은 죽는다” “남자가 왜 그러느냐” “아직도 그러느냐”며 다그치는 이가 없었다. 대신 함께 울먹여줬다.


모현호스피스에서 일하는 천주교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손영순 수녀와 자원봉사자 전정임·김난희씨, 그리고 ‘샘터’ 23기 9명은 그렇게 처음 만났다. 김씨는 모임이 열리는 목요일이면 새벽 일찍 KTX를 타고 울산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지난 8주 동안 한 번도 모임을 거르지 않았다.

두 달이 지나 졸업식이 열린 지난달 28일 오후 2시. 가장 먼저 모현호스피스에 들어선 김씨는 한편에 앉아 ‘상실 노트’를 한참 들여다봤다. 샘터에서는 떠난 이에게 차마 못했던 말들을 남기며 스스로 돌볼 수 있도록 상실노트를 쓰게 한다. 김씨는 아내의 얼굴이 떠오를 때마다 벅차오르는 감정을 한 자씩 노트에 눌러썼다. 함께 찍은 사진을 붙이고 ‘정말 보고 싶었던 당신’ ‘여보 쉬었다 갑시다’ 같은 말들을 밑에 써넣었다.

그는 “서른두 장을 채우고 나니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샘터’ 졸업을 앞두고 김씨는 모현호스피스로 보랏빛 호접란을 배달시켰다. 호접란의 꽃말은 ‘애정의 표시’다. 그는 “호접란은 잘 시들지 않는다”며 “샘터에서 만난 인연들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다”고 했다. 아내를 떠나보낸 뒤 처음으로 정장 차림을 했다는 그에게 동기들은 “말쑥해서 보기 좋다”며 덕담을 건넸다. 일주일 만에 만났는데도 샘터 23기 9명은 서로의 얼굴만 봐도 좋은 눈치였다. 다들 샘터 덕에 울음 대신 웃을 일이 생겼다고 했다.

사랑한다는 말도 못했는데

샘터 23기의 마지막 모임은 단출했다. 한데 둘러 앉아 처음과 달라진 마음가짐을 터놓았다. 한 사람이 슬픔에 맞서 살아갈 힘을 얻었다고 하자 하나둘 입을 열었다.

송모(65·여)씨는 “남편을 5년 전 떠나보내고 난 뒤 말할 수 없이 힘들었다. 모임을 마치고 나니 이제 조금은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신영혜(70·여)씨는 “지난 8주 동안 마음속 응어리를 다 토해냈다. 그러고 나니 굳었던 몸과 마음이 반쯤은 풀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씨는 사별이 남긴 슬픔을 마주하기 힘들었다. 남편은 2014년 10월 뇌출혈로 숨졌다. 갑작스레 찾아온 이별이었다. 버티다 못해 지난해 4월 한 병원을 찾아 사후 시신을 기증하겠다고 서약하기도 했다. 문득 떠오른 모현호스피스가 그를 다시 살아갈 수 있게 했다. 9년 전 외삼촌이 경기도 포천 모현센터의원 호스피스병동에서 마지막 순간을 보내고 숨을 거뒀었다.

다시 힘을 내서 살아가겠다고 했지만 터져 나오는 울음은 숨길 수 없었다. 신씨는 “45년간 함께 살았지만 사랑한다는 말을 해본 적 없다”면서 “사별 후 남편을 더 사랑하게 됐다. 영정을 바라보며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고 눈물을 훔쳤다.

여덟 번의 모임은 사별가족들이 떠난 이를 되새길 수 있게 했다. 박모(36·여)씨는 지난해 4월 아버지를 간암으로 떠나보냈다. 원래 아버지와는 데면데면 겉돌았다. 그런 그는 3개월 동안 아버지 곁에서 간병하며 “아버지가 살아만 계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만큼 아픔도 컸다. 사별가족 모임을 찾다 모현호스피스를 찾아오게 됐다. 박씨는 “사별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사별 뒤 찾아오는 감정을 이해하고 나누기 힘들다”면서 “샘터에서 만난 다른 사별가족들이 큰 위로가 된다”고 말했다.

사별가족 돌봄 모임 ‘샘터’는

샘터는 경기도 포천 모현센터의원, 강원도 강릉 갈바리의원을 운영하는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가 모집·운영하는 사별가족 돌봄 프로그램이다. 상·하반기 두 차례씩 10명가량이 모여 8주 동안 모임을 갖는다. 사별가족이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따로 회비를 받지 않는다. 1994년부터 사별가족 300여명이 샘터를 거쳤다.

서울 용산구 모현호스피스에서 매주 목요일 오후 모임을 갖는다. 떠난 이에 대한 기억 회상하기, 죄책감 나누기, 슬픔을 표현하고 슬픔의 증상 자각하기, 사별 이후 감정 헤아리기, 사별 뒤 변화된 자신의 모습 생각하기 등으로 구성된다. 드라마·음악·미술·아로마테라피 등 다양한 치유 프로그램도 경험할 수 있다.

샘터에서의 만남은 여덟 번의 모임으로 끝나지 않는다. 23기의 마지막 모임을 축하해주려 지난해 샘터를 거쳐 간 사별가족 7명이 찾아오기도 했다. 이들은 앞으로의 삶을 응원하며 꽃을 건넸다.


김기영(69)씨는 ‘21기 회장’이라고 스스로 소개했다. 그의 아내는 2014년 10월 췌장암으로 숨을 거뒀다. 다섯 달의 짧은 투병 생활 동안 모현호스피스의 가정 호스피스 돌봄을 받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온 의료진이 큰 힘이 됐다고 했다.

김씨는 그런 인연으로 샘터를 찾게 됐다. 샘터에서 만난 다른 사별가족들과 형제자매처럼 어울린다고 했다. 지난달에는 베트남으로 함께 여행도 다녀왔다. 더 이상 울지 않는다던 김씨는 마지막 모임을 갖고 울먹이는 사별가족들을 보며 눈물을 훔치고선 멋쩍어 했다.

10년 가까이 샘터를 운영하고 있는 손영순 수녀는 2일 “죽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 사별이 남긴 감정들을 편하게 나눌 수 있는 프로그램이 절실하다”면서 “병동에서 숨을 거둔다고 호스피스의 역할이 끝나는 게 아니다. 사별가족의 슬픔까지도 돌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신훈 기자 zorb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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